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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개봉 예정작인 남한산성





줄거리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In 1636, when an army of soldiers was attacked by an army of soldiers in 1636, wages and adjustments were put to rest in Namhansansung. There is also a sharp confrontation between the cold, hunger and absolute military forces, and the opinions of the ministers, who are utterly hemmed in by the military. The governor, Kim Sang-heon (Kim Yoon-seok), the governor of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said, " We have to endure the humiliation of maintaining the humiliation of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 The fate of the Namhaemun kingdom of Namhyangwon, where there is nowhere to go, is buried there!






출연진








스틸 컷











​​예고편 클릭





​남한산성 역사 스토리 소개




임진왜란후 전란의 황폐화된 조선을 다시 재정비하기 위해
광해군은 부단히도 노력했으나,
계축옥사로 인해 축출된 서인의 세력의 불만이 가속화되어
능양군(인조)을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결국 아무생각도없고 줏대도 없는 인조가 서인의 세력을 등에업고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은 축출당하고 만다.

이로인해, 조선은 황폐화된 국가를 제대로 다듬어 보지도 못한채
국운이 다한 명나라의 쇠퇴와 후금(누르하치,청나라)의 도약으로
인해 광해군이 애써서 명나라와 후금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모든 중립정책을 폐지하고 역시 병신같은 인조는 서인들의
말만듣고 망조가 들어버린 명나라만 쳐다보게된다.
이로써, 조선과 후금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고
조선의 내부에서는 인조반정 당시, 가장 공이 컸던 이괄이 인조의
어리버리함에 난을 일으키는등 조선은 이미 내부적으로도
단속이 안되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겨우 임경업장군을 소환하여 이괄의난을 잠재우지만 난에 가담했던 이괄의 똘마니들이
후금으로 도망쳐서 '지금이야말로 조선을 정벌할 시기입니다'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누르하치의 아들 청나라 태종은
정예병 3만의 병력을 동원한 1차침입을 거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기세등등하지만 청나라군은 사실 그렇게 많은 병력이 아니었으나,
조선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은채 평양과 개성을 내어줌으로써
병신인조는 강화도로 도망치고, 서인들은 청나라와 휴전을
맺음으로 바로 형님,동생해버리는 정묘조약을 체결하고만다.
사실상, 청나라의 목표는 명나라의 멸망이였기때문에 조선침공에
대병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단순히 조선의 국력을
테스트해보는 차원의 가벼운 침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이미 항전할 여력이 없었다는게 사실이다.





허나, 척화파의 대두로 한번 싸워보자라는 의견이 거세지고
병신같은 인조는 자신의 의견은 한번도 내세우지못한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등, 청나라의 무리한 조공요구로 인해
병자년에 다시 한번 청나라의 대침공(병자호란)에 직면하여
청나라군은 11만의 대병력을 이끌고 남하했다.
사실, 조선조정은 지난번 정묘호란의 전례로 인해
임경업장군의 백마산성과 평양성에 각각 1만명의 병력을
배치시켜 순식간에 청나라군이 한양까지 밀고내려오는것을
방지하고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을 짰으나, 청나라군은 이를 간파
하여 북방에 배치된 조선군을 포위만하고 우회하여
3일만에 개성을 통과하여 파죽지세로 밀고내려오니
조선군은 제대로 된 방어책을 세울 수가 없었음이다.
또한 임진왜란의 교훈으로 왜국과 근접한 경상좌우도에
5만명을 주둔시켰으나 청나라군의 속도가 너무빨랐기에
이 군대도 당장 이동시킬 수 가 없었다.




그리하여 인조는 강화도로 재빨리 도망가려했으나,
이미 정묘호란에서 조선의 왕은 허구헌날 위험하면 강화도로
도망간다라는 걸 깨달은 청나라군이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
하였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피하는데..........


그 마지막순간을 그린 영화다.





이씨조선사상 형편없는 무능한 권력자 인조는
찌질한 연기도 엄청 잘하는 박해일이 잘 그려냈고,
물론 활에서 청나라와 대결을 해봤던 박해일을
이 영화에서 위험한 순간에 갑자기 등장하여 활을 잘쏘는
조선군 궁수로 특별출연했으면 관객들에게 깜짝선물도 될 수 있었지만, 인조로 활용한점은 참으로 아쉽기도하다.

청나라에 대항하여 결사항전을 하자는 이가 바로
척화파 김윤석이다.
아귀같은 양아치타짜의 눈빛이 아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바칠려는 눈빛의 연기는 참으로 대단하기까지하다.



임진왜란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국가가 망하기 일보직전이니 제대로 청나라에 항복하여 예를갖추고 국가와백성부터
살리고보자하는 이가 바로 주화파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영화 광해의 느낌이 남아있었는지
한국의 톰크루즈로 불리우는 날렵하고 젠틀하고 용감무쌍한
이병헌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다.
차라리 척화파를 이병헌이 그려냈으면 어땠을까라는 크나큰
아쉬움이 남지만, 이병헌은 역시나 차분하게 연기를 잘해낸다.

오히려 추격자 김윤석이 그 특유의 연기로 미치갱이처럼
발광하며 영화의 전체의 긴장감을 이끌어간다.
사실 김윤석의 사극연기는 퓨젼코믹전래동화영화인 "전우치"
에서 본게 전부인데, 엄청난 포스를 발현해낸다.

또한 진중한 연기를 잘 하는 고수가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역
을 맡았는데, 젊은피의 고수가 예전 김성수감독의 영화
무사에서 처럼 주진모같은 배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리고 그냥 딱 보고만 있어도 조선군의 갑옷이
잘 어울리는 남자 박휘순은 1만5천명을 이끄는
남한산성 수비대장역을 맡았는데, 김윤석을 도와 엄청나게
잘 그려냈다.

결국, 풍전등화의 위기와 긴장감속에 코 앞까지 밀고온
청나라군과 최후의보루인 남한산성의
조선군은 피나는 혈전을 준비한다.
남한산성의 수비군 1만5천명이 두달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은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몰려들어온 2만명의 관료들과 백성들 때문에 채 한달을 버틸 수 없었고, 또한 너무나 피폐해진
국토와 국력으로 인하여 임진왜란처럼 전국각지에서 의병도
활발히 일어날 수 없었던게 사실이다. 통수권자인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에 갇혀버렸고, 인조의 아들들(대군,세자)과
식솔들은 강화도에 갇혔으니 참으로 갑갑한 형국이었음이
자명했다.

그리고 더욱 인조의 항복결정에 가속도를 붙힌건,
인조가 가장 믿고있던 경상좌우도의 조선군 조총주력부대인데
4만명에 이르는 경상도군은 조총사격술의 미숙과 탄환배분의 졸속으로 인해 어이없게도
청나라군 5천명(팔기병군단)에게 무참히 박살이 나기에 이른다.
사실상, 삼국시대의 고구려군의 철기병전술과 고려시대의
대몽항쟁을 겪으면서 한반도의 기병전술은 상당히 조선까지도
그 영향을 미쳤다.
이씨조선사 초기 북방에서 활약했던 조선군의
기병대와 활로 무장한 조선군보병은 상당한 전투력을
보유했었고 임진왜란발발당시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
기병대역시 청나라군의 팔기병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일전쟁이 끝난 후 전술의 진일보는 커녕,
조선군은 조총을 너무 맹신했음이 아쉬운대목이다.

결국, 청나라군의 주력부대가 남한산성을 전체적으로 포위하고
나머지 수군이 강화도를 일거에 기습함으로써,
강화도가 와르르 무너지는 사태로 인조의 아들들이 포로가되고
이로인해, 조선군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불쌍하고 무능했던 인조는 결국 항복을 선택한다.

청나라에 대항하여 마지막 한순간까지 싸우는
추격자 김윤석의 고군분투와
수비대장 박휘순의 연기는 단연 일품으로 그려진다.
남한산성의 조선군 1만5천명의 필사의 대항전을 멋지게
화면에 담아냈지만, 결국 인조는 항복하여 삼전도의굴욕을
치르게된다.






​현재 남한 산성 탐방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성가퀴는 1,700첩(堞)이고, 4문(門)과 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다만 성의 둘레가 6,297보(步), 성가퀴는 1,897보라고 하는 등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설은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간(間) 반, 하궐(下闕) 154간이었다. 재덕당(在德堂)은 1688년(숙종 l4)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을 옮길 우실(右室)도 세웠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客館:人和館)은 1829년(순조 29)에 수리되었다.







It was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 57 on January 21, 1963. Along with Bukhansanseong Fortress, the fortress was built in the south of Namsan Mountain, and the fortress was built in 1624 by King Mu of Silla.
According to NamhangjI (Namjang), originally, Shim Ki-won was built, but his father died in July of 1626 and finished construction in July 1626. The temple was commissioned mainly by the monks. The castle was 1,700 pieces of silver, four doors long and eight doors wide, and the buildings were equipped with all kinds of facilities in the castle, such as offices and storehouses, and stood up to seven temples.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of 1,297 steps around the fortress, and the height of the statue is called 1,897. These facilities were only basic, and the expansion of the facility was continued from the beginning of the period until the beginning of the period. Haenggung Palace, where the king lived, was between 73 and 730, respectively. The temple was built in 1688 (King Sukjong 4) and was founded in 1711 to enshrine the shrine of Jongmyo Shrine. He also founded a room to move his resignation. Founded in 1624, the objective was repaired in 1829 (Sonjo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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